내 코가 석자여서
내가 걱정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인생
“오늘도 내일도 내가 제일 걱정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연예인들은 건물이 한 채씩 늘어나고, 모 야구 선수는 해외에서 몸값이 올라간다. 친구 아들은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고, 회사 부장님은 대리석이 깔린 멋진 집을 장만한다. 아이돌 가수는 웸블리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하고, 영화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걱정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퍼거슨 감독의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지만, 트위터도 인스타그램도 안 하는 탓에 남들의 근황에 무지하다. 누가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생각나거나 궁금할 때는 전화를 걸거나 만난다.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몰라? 그 사람 요즘 ○○ 하고 있잖아.” 같은 이야기는 늘 제일 마지막에 전해 듣는다. 그러니까 남들은 내버려 둬도 다들 잘 산다. 문제는 언제나 나다.
25년 차 직장인,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우리는 보통 태백산맥 정도의 오해 덩어리를 끌어안고 산다. 남들은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만 같고 남의 떡은 늘 커 보이는 법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은 ‘설국열차’의 앞 칸 지정석에 앉아 있고, 자신만 냄새나는 뒤 칸으로 보내졌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인생이 고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TV나 SNS 속에는 태생부터 금수저이거나 걱정이라고는 근처도 못 가본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과연 SNS 너머의 그들의 모습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알 길이 없다. 어떤 의미로건 다들 힘들고, 갑갑하고, 답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25년째 회사를 다니며 퇴직과 정년 사이를 고민하고, 누군가의 목덜미를 잡아채는 말주변도 없고, 숨소리마저 낮추며 있는 듯 없는 듯 사무실 복도를 지나다니지만 차마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저자의 유쾌한 넋두리를 이 책에 담았다. 덤덤하고 때론 시크하면서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35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위로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 방향은 아무도 모르기에
행복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물려받은 재산도, 재능도 없어서 월급을 받기 위해 늘 회사와 집을 똑딱거리고, 나이 먹어 몸 여기저기는 삐끗대기 시작했고, 벌기는 다이어터의 식단만큼 벌면서 쓰는 것은 먹방 유튜버 한 끼만큼 쓰는 이십 대의 딸을 키우느라 허리가 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매일을 살아가는 저자의 본격 현실 에세이다.
“남들이 걷는 방향을 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게 된 것은 사십이 넘은 후다. 세상이 말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내가 전혀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다. 세상이 칭찬하는 일에 정작 나 자신은 기쁘지 않았다. 물론 기쁜 척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만족감도 행복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방법과 크기도 각각 다르다. ‘척’하고 살고 있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일단 납득하고 나면 방법이 생긴다.” (‘내 인생의 전성기’ 中)
지은이
지안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여 25년째 근무 중인 직장인이다. 끈덕지게 버티기 위해 업무 지식과는 별개의 잡다한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고, 보고, 쓴다. ‘그때 그걸 해야 했는데…’ 하는 일을 만 가지쯤 끌어안은 채, 이 시간 이후로 그따위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범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마시고, 다니고, 노는 것은 잠시 멈췄다. 유학, 휴학, 부모님 찬스 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고, 이별, 이혼, 노화는 겪고 싶지 않지만 지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브런치 brunch.co.kr/@zian
일러스트
두루미
인스타 dalgona_99
이메일 rumidu99@gmail.com
차례
지은이의 말
1장 아아, 제가 가장 걱정입니다
내가 제일 걱정이다
‘빠른’ 년생이 어때서요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면
미움받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미녀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돌아오라, 감수성
가풍이란 존재하는가
2장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25년 차 직장러의 출근 모드
말로 합시다
무례함에 대처하는 자세
당신 탓이 아닙니다
괜찮다는 그 말은 이제 좀
퇴사 직전의 나를 잡은 세 가지
너에게 배운 한 가지
3장 사랑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봄은 벚꽃이다
고양이와 그녀와 나의 일요일
당신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나요
연애는 어른의 일
나쁜 연애는 있어도 몹쓸 과거는 없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4장 틈틈이 노는 것은 안 비밀
혼자 여행을 계획하는 당신에게
심야식당에 가고 싶다
슈퍼밴드를 보러 갔다
어른의 음료, 커피와 콜라
신의 눈을 찌른 소년 <에쿠우스>
5장 그럼에도 신나게 사는 중입니다
나이 먹을수록 탄탄해지는 것
요즘 가장 집중하는 일
술이 줄었다
망신과 범죄 사이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6장 행복할 시간은 지금입니다
내 인생의 전성기
나는 나, 너는 너
내게도 선물이 필요해
쫄보의 작지만 소중한 행복
인생의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책속으로
“너네는 4년제냐, 2년제냐?”
질문의 의미를 모른 채 4년제라고 대답하자 팀장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 너희 4년제냐? 그럼 말이 좀 통하겠네.”
팀장은 벌떡 일어나 우리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심지어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던 음료수를 꺼내주며 부서의 전체적인 일과 근무 패턴에 대해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부서의 절반 정도가 4년제 졸업자이고 절반 정도는 2년제 졸업자라는 것을 그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2년제 졸업자들은 교육 없이 부서에 투입되어 석 달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석 달간의 답답함을 ‘교육받고 온 4년제 졸업자’들에게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다(교육도 안 해주고 현장에 투입한 다음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_31~32쪽
회사 생활 내내 수십 명의 팀장을 만났다. 그중에 ‘크렘린’이라는 별명을 가진 팀장과 3년 정도 일했다. 대부분 직장에 이런 상사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비밀스럽고 속을 알 수 없고 의뭉스러운 동료를 만나면 피하면 되지만 팀장의 경우는 방법이 없다.
인사도 잘 받지 않고, 일이 생겨 대면할 때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당시 내 느낌으로는 ‘넌 내 시선을 받을 가치도 없어’ 또는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몰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와라, 가라 정도는 손가락 신호로 끝냈다. 내 인사 발령을 중간 관리자에게 전해 듣고 그 즉시 자리를 이동한 적도 있다. 한마디로 그 팀장은 무례함의 끝판왕이었다. 당시의 나는 거의 신입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팀장의 행동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했고, 주위에 나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역시 ‘원래 저런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을 뿐이다. _71~72쪽
이혼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이혼은 내 선택이지만, 딸에게는 아버지를 빼앗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은 딱 4년이 한계였다.
이혼하자는 말을 하고 서류가 정리될 때까지 또 6개월이 걸렸다. 내가 이혼한 2000년대 초반에는 ‘이혼 숙려 제도’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법원에 가기만 하면 한 번에 일이 해결됐다. 그런데도 6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_125쪽
대학교 3학년 등굣길 신촌 한복판에서 버스가 달리는 길에 대자로 누워 있는 남자를 본 이후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지는 않게 되었다. 도로를 청소하시는 분이 열일을 제치고 그를 깨워 인도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는 질질 끌려가다가도 기어이 대로변 찻길 정확히 그 자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신호가 세 번 바뀔 때까지(차로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뒤로 차가 엄청 막혀 있었다) 차장 밖으로 그걸 지켜본 이후로 나는 굳게 다짐했다. 상상하고 있는 죽음의 상태 중 술 마시고 객사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지금 내가 과음의 기준을 삼는 지점은 하나다. 귀가 후 뭔가를 먹었으면 만취한 것이다. _184쪽
돌아보면 내 이십 대는 형편없었다. 연애는 줄곧 실패 중이었는데, 만나도 어떻게 그런 이상한 인간들만을 만나는 것인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취업의 문은 통과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자신이 없었다. 미래는 추운 아침 마스크 위에 쓴 안경처럼 뿌옇기만 했다. 힘차게 달려가는 타인을 바라보다 주저주저 한 발을 내딛지만, 그곳이 진창인지 단단한 땅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딛기 전에 모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움직이고 나서도 머뭇거리는 것은 곤란하다. 말하자면 나의 이십 대는 다른 이의 걸음에 조바심내면서 휘청거리고 방향 없이 움직이던 시기였다. _198쪽